Reading to Live : 2025.11.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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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뭐 읽고 사는지 아는 사람? 정말이지⋯ 무엇을 읽고 사십니까?"
전진도 후진도 아닌, 끝도 시작도 아닌, 이따금 팡 터질 뿐인 책 팟캐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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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대 이집트에서는 임신테스트를 할 때, 보리와 밀을 사용했다. 먼저, 보리를 채운 자루와 밀을 채운 자루를 각각 준비해, 2개의 자루에 임신 가능성이 있는 여성이 소변을 본다. 만약 보리나 밀이 발아하면 그 여성은 임신한 것으로 판정하고, 발아하지 않으면 임신이 아닌 것으로 판정했다. 또 보리가 먼저 발아하면 남아, 밀이 먼저 발아하면 여아라고 여겼다.
from 이끼
복복서가에서 나온 『임신테스트기』를 설명하며 엉망진창으로 설명드린 게 많았습니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쌀과 보리로 테스트를 한 게 아니라 밀과 보리였으며 제가 말하고 싶었던 건 과학사회학이지 행위자 연결망 이론은 아니었는데요⋯. 팟캐스트를 편집하면서 자괴감이 이렇게 많이 들었던 적이 없습니다. 그건 아마도 제가 임신을 해서 일지도 모르겠네요⋯. (변명)
어쨌든 의학이 과학에 편입, 고도화 되면서 재생산 기술에서 여성 당사자가 수동화 되거나 소외되는 경우가 굉장히 많습니다. 저의 이야기가 흥미로우셨다면 『신비롭지 않은 여자들』을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는 『폐기된 인생』을 읽어보러 가보겠습니다.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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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레터에서 예고했던 카메라 자랑. 필름 없는 필카. 디지털 카메라이지만 찍은 사진을 바로 확인할 수 있는 모니터가 따로 없고, PC에 연결해야 확인할 수 있어요. 촬영한 사진은 필카의 색감으로 나와요. 생일 선물로 받았답니다. 오홍홍
from 양
양입니다. 《뭐읽사》 3화 썸네일의 세상에서 제일 귀여운 강아지는 제가 임보 중인 망고입니다. 망고는 한 달 전에 저희 집에 왔어요. 저는 어릴 때 10년 동안 강아지와 함께 살았고, 그 이후엔 7년 동안 고양이와 함께 살았습니다. 그 외에 저의 삶에 함께한 동물은 토끼, 작은 새들, 수많은 햄스터들, 아주 잠깐 기니피그⋯ 정도가 있습니다. 강아지와는 가장 오랜 세월을 함께 했었고 그래서 임보에도 자신이 있는 상태였는데요. 세상이 변한 건지 강아지라는 존재의 속성이 변한 건지 제가 변한 건지 이거 참 강아지 돌보는 일이 보통 일이 아니더라고요. (변한 건 없고 그저 제 기억의 문제일 뿐이겠죠⋯.) 고양이는 뭐든지 알아서 혼자 척척이었는데 강아지는 하나부터 열까지 아기처럼 다 챙겨줘야 하데요? 훈련도 시켜야 하고 터그 놀이도 해야 하고 쉬는 왜 자꾸 밟는지 바닥도 하루에 네 번은 닦아야 하고 응가 못 먹게 막아야 하고(그걸 왜 먹어 대체⋯?) 산책도 하루 세 번 나가야 하고⋯. 망고가 온 후로 저는 강아지를 돌보는 모든 숙련된 보호자들과 어린 아이를 돌보는 모든 숙련된 엄마아빠들에 대한 존경심이 생겼습니다. 망고 덕분에 저는 살이 좀 빠졌고 요즘 수척해졌다는 얘기를 들어요.
눈 밑만 퀭해졌다면 괜찮은데 정신도 퀭해요. 저는 분명히 바짝 정신 차리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제 발자국마다 정신없음의 흔적이 찍혀 있어요. 요즘 회사에서 하는 일마다 자잘한 실수를 합니다. 누군가 자상하게 알려주거나 단호하게 신고해줘서 자꾸만 여기저기에 감사와 죄송을 남발하게 됩니다. 사회 초년생 때 일기장에 “신입사원이란⋯ 하루종일 죄송한 일⋯” 이런 걸 썼는데 직장인 10년 차⋯ 여전히 하루종일 죄송하고 있습니다. 일기장을 잃어버리지 않게 조심해야겠어요. 어떤 전기 작가가 제 일기장을 주워서 “이 사람은⋯ 평생 죄송한 걸보니 실패한 인생이다.”라고 써버리면 어떡해요. (《뭐읽사》 3화 라짜로의 『폐기된 인생』 이야기 참고)
직장인 3년 차 악귀에 들렸을 땐 실수할 때마다 홀로 눈을 희번득 뜨며 마음속으로 ‘시스템을 이따위로 만들어 놓고 인간을 갈아서 막으려는데 어떻게 실수를 안 하냐. 내 실수는 내 탓이 아니고 노동자의 노동 시스템에 투자하지 않는 자본가 흡혈귀의 탓이다!!’ 소리 질렀는데 10년 차⋯ 이제는 체념한 채 내탓이오⋯ 내탓이오⋯. 합니다. 근데 내 탓이오가 반복되면 마음이 힘들어요. 꼼꼼한 성격의 사촌언니에게 어떻게 실수하지 않을 수 있냐 물었는데 자기도 실수 때문에 요즘 힘들다는 답변이 왔습니다. 인간이기 때문에 모두 실수하며 사는 걸까요? 저는 언니에게 이렇게 답장했어요. “선생님은 인간이라면 하는 실수를 하시고 저는 이 인간이 왜 이러나 싶은 실수를 해요⋯.”
책 얘기를 해야 하는데 이렇게 또 쓸데없는 얘기를 하고 있네요. 《뭐읽사》 3화에서 저는 『구불구불 빙빙 팡 터지며 전진하는 서사』를 소개했어요. 정말 좋은 책이었는데요, 지금 제목을 쓰면서 보니 제 멘탈 같네요. 구불구불 빙빙 팡 터진 멘탈⋯ 책 얘기는 팟캐스트로 들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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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살 난 이 세계를 교정해야 한다"
from 라짜로
지난 2개월 동안 저에겐 어깨-골반-허리로 이어지는 근골격계의 지속적인 통증이 있었는데요. 아무래도 안 하던 운동을 시작한 게 원인인 것 같습니다. 거동이 쉽지 않으니 생각도 무뎌지는 느낌⋯ 아니 생각은 원래 무뎠지⋯. 당면한 상황이 얼마나 좋지 않은가 하면, 앉거나 누워서 쉰다고 호전되는 게 아니라 점점 나빠진다는 점인데요. 이런 사정을 만나는 사람마다 구구절절 설명하기는 쉽지 않지요. 지난주 『장애학의 시선』을 읽으면서, 지난 녹음에서 소개한 『폐기된 인생』의 주인공 역시 마찬가지였을 거라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습니다. 그 이유는,
'일기왕' 주인공의 삶을 너무 개인의 자기 구제 측면에서만 이야기한 게 아닐까? 그는 자본주의라는 체제 하에서만 실패로 규정된 삶을 살았을 뿐이고, 그가 스스로 실패했다고 생각했더라도 그 생각 역시 구조 안에서 작동한 것일 수 있다. 그에게는 관심이 필요했지만, 정말로 필요했던 건 제도였을지도. 무엇보다 그가 더는 스스로를 연민하지 않게 되었을 때, 그는 구조 바깥을 상상할 수 있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타협하지 않는 그는 자신만의 저항에 성공했던 것일 수 있다⋯.
책의 주인공은 스스로 의식주를 해결하며 살았고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쓰기’를 멈추지 않았던 사람인데. 그걸 모르지 않는 제가 함부로 그의 삶을 연민한 것은 아닐까요? 비록 저의 발화는 ‘연민하지 않음’에 맞춰져 있었더라도 마음속으로도 과연 그렇게 생각했는지⋯. 내가 뭐라고⋯. 모든 구분과 경계는 임의적이라는 사실을 말하지 않고 우리가 성공과 실패를 가늠하려 들어도 되는 것일까요? 요즘은 유리관의 『교정의 요정』을 즐겁게 읽고 있습니다. 교정공의 입장에서 한 사람의 엉덩이는 한 개인지 두 개인지를 고찰하는 글에서 어떤 아름다움을 발견하여 여기 옮겨 둡니다.
존재하는 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언어에도 적어지려는 속성(사라지려는 속성)과 정확해지려는 속성(많아지려는 속성)이 함께 있으며, 그 모순이 언어를 변화시킨다. 그 변화는 다시 언어의 변하지 않으려는 속성(영원하려는 속성)과 모순을 이루며 언어의 바깥과 상호작용한다. 만약 누군가 “한 인간에게는 엉덩이가 2개 있다!”라고 갑자기 주장하며 나선다면 거기엔 아마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자리에서 뭔가를 새롭게 얘기해 보고 싶다거나, 엉덩이를 2개로 인식하게 된 경험을 말하고 싶다거나, 개개인을 초월해 엉덩쪽 3개 이상 세어야 하는 자신의 처지를 말하고 싶다거나⋯ 만약 한 인간의 낱낱 엉덩이를 세는 단위로서 ‘개’를 사용하는 방향으로 언어를 변화시키고자 한다면, 그러한 쓰임이 널리 통용되는 조건이 마련되어야 한다. 또는 이미 마련되었거나, 아니면 발화 자체가 그러한 조건을 만들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거나⋯ 우리는 세계에 맞게 언어를 변화시킬 수 있고, 언어에 맞게 세계를 변화시킬 수도 있다. 세계가 변하는 것을 따라 언어를 고쳐 쓰거나, 세계와 무관한 어딘가에 언어를 저장해 놓을 수도 있다. 요즘은 어떠하며 우리는 어쩔 것인가? 언어는 본래 흔들리는 것이다. 거기에 기대는 방식에도 두 극단이 있다. 혹시 ‘엉덩이가 하나라는 건 거짓말’이라고만 말하고 있지는 않은가? 말들이 맞게 부려지고 있는지 성실로 살피는 데 일조하고 행해야 할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웃고 말 개소리가 있는가 하면, 혀가 으깨져 죽어도 바꿔야 할 세계가 있다. 소련 붕괴 이래로 나, 인민의 문제 의식이 이와 같다. - '엉덩이: 두 개인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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