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관의 『사명을 찾아서』에 대해 소개하면서 저는 희망에 대해 말했는데요. 당최 희망이란 무엇일까요? 트럼프가 그 자리에 있는 건 우리 세계의 반영이고, 이란의 초등학교에 포탄이 떨어지는 것을 막지 못한 것도 우리 세계의 반영입니다. 단지 거대할 뿐 아니라 촘촘하기도 한 파국. 나 역시 그 일원이 되어서 만든 파국 앞에서 우리들은 무엇을 희망으로 삼고 살아가야 할까요?
파괴. 그 단어를 삼켜보라. 입 안에 넣고 굴려보라. 처음엔 결코 편안하게 삼켜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결국은 소화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지금 세상의 질서는 파괴이기 때문이다. - 톰 피터스, 『앙트레프레카리아트』에서 재인용
이 과정에 닿기까지의 책들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보도블럭 아래 해변』, 『해커스, 광기의 랩소디』, 『크랙업 캐피털리즘』, 『내전, 대중 혐오, 법치』, 『차별하는 데이터』⋯ 그리고 SNS를 하염없이 새로고침하다가 르 귄의 『바람의 열두 방향』을 찾기 위해 책장을 또 한참 뒤져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을 읽었습니다.
오멜라스의 사람들은 모두 아이가 그곳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직접 와서 본 사람도 있고, 단지 그런 아이가 있다는 것만 아는 사람도 있다. 사람들은 아이가 그곳에 있어야만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 이유를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지만, 자신들의 행복, 이 도시의 아름다움, 사람들 사이의 따뜻한 정, 아이들의 건강, 학자들의 지혜로움, 장인의 기술, 그리고 심지어는 풍성한 수확과 온화한 날씨조차도 전적으로 그 아이의 지독하리만치 비참한 처지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모두 잘 알고 있다. - 어슐러 K. 르 귄 『바람의 열두 방향』
오멜라스의 진실을 알고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은 그들이 가고자 하는 곳을 알고 있다고 하던데, 여전히 어디로 가야할 지 모르는 채로 머물러 있는 라짜로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