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to Live : 2026.02.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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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뭐 읽고 사는지 아는 사람? 정말이지⋯ 무엇을 읽고 사십니까?"
《뭐읽사》의 새 코너 [책등산책] & 새해 첫(⋯) 뉴스레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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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ierre Parrocel (French, 1664-1739), Woman Reading in front of a Fireplace, 1735
from 이끼
최근 병렬독서라는 말이 유행을 했었지요. 책을 잔뜩 사지만 읽는 속도를 따라갈 수 없어 적독가를 자처하시는 분들이 많았을 텐데, (저 포함) 죄책감을 덜어주는 표현이라 저도 많이 썼습니다.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은 벌써 15년째 읽고 있고 『토지』도 햇수로 2년째 읽고 있는데요. 이것도 병렬독서로 카운트해도 되겠지요⋯. 이렇게 된 이상 제대로 ‘바이브 리딩’ ‘읽고 있는 책’ ‘읽고 싶은 책’ ‘읽어야만 하는 책’ 이야기를 해보는 건 어떨까? 하는 마음으로 시작한 [책등산책]으로 찾아뵈었습니다. (아직 못 들으셨다면 유튜브와 스포티파이에서 들어주세요)
읽지 않아도 장바구니에 넣는 것만으로도 배가 부른 책이 있습니다. 혹은 소유한 것만으로도 흡족한 책들도 있고요. 집에 있는 책들을 가만히 살펴보니 (저는 최근에 300권에 가까운 책을 정리했습니다.) 제가 읽을 것 같진 않더라고요. 그렇다고 그 책이 제게 쓸모가 없을까요? 그건 아니겠죠. 30년 내에 읽는 것을 목표로 하겠습니다.
언제 어디서든 책을 읽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게 무료함을 참지 못하는 저 같은 사람에게 주어진 유일한 오락거리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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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uca Giordano, Christ Cleansing the Temple, 17th century
from 라짜로
시차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책을 읽는 시간, 녹음을 위해 우리가 모인 순간, 완성된 결과물을 공개할 때, 듣는 사람들의 각기 다른 여유 시간들, 그 사이에서 발생하는 시차에 대해서. 뉴스레터를 쓰고, 발행하고, 도착한 편지가 읽히는 시기에도 차이가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책을 쓴 사람과 그걸 읽는 독자 사이의 시차. 책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건 과거의 편지를 받아 드는 일과 비슷하고, 사실 그건 책이 아니라 다른 모든 것에 대한 이야기도 마찬가지일 테고, 그런 모호함 때문에 우리는 현기증(jet lag) 속에서 살아가는 거겠죠. 저만 그런가⋯? 우리 삶이 뒤죽박죽인 것처럼 우리의 시간은 얼마간 뒤죽박죽이고 누구나 다른 방식으로 뒤죽박죽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순간에 우리는 안타깝게 어긋나면서 서로를 스쳐 지나 보냅니다.
권준희의 『이주, 경계, 꿈』도 이런 시차로 시작됩니다. 중국과 한국의 경계에서 오가며, 지연된 꿈의 시차를 겪는 연변의 조선족. 1990년대부터 시작된 한국으로의 이주, 코리안 드림이 끝나가고 중국 내부의 차이나 드림을 찾아 이동하게 되는 변화의 시기, 조사가 진행된 2004년부터 2016년까지 같은 공간을 오간 연구자의 시간, 그리고 다시 10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동시대 한국 독자들에게 책의 형태로 도착한 글. 저자와 대상은 서로에게 영향을 받고 이동과 기다림, 지연의 순간들 사이에서 대화를 나눕니다. ('이주'와 '경계'와 '꿈'이 각기 다른 폰트로 적혀있고, 그중 '이주'와 '경계'가 중앙에 그어진 선을 넘나드는 동안 조금 흐릿한 폰트의 '꿈'은 아직 그 선을 넘지 못한 표지가 절묘합니다.) 꿈의 시간성⋯ 보류와 지연 속에 결코 손에 잡히지 않는 꿈⋯ 웅성대며 기다릴 수밖에 없는 민중들⋯
그러니까⋯ 이 뉴스레터의 발송 시점과 우리의 녹음이 진행된 시기에는 시차가 있다는 말이죠. (늦었다는 뜻) 이미 우리는 그 자리에 없지만, 마치 그 자리에 있는 것처럼 우리의 새 코너 ‘책등산책’에 대해 이야기해야 합니다. (진짜 너무 늦었다는 뜻) 그리고 이런 교란? 뒤틀림?은 새로운 의미를 자아내기도 할 것입니다⋯. (드릴 말씀이 없다는 뜻)
[책등산책]은 읽고 싶은 책은 많지만 그럴 시간은 없는 사람들이 모여서 아직 다 읽지 못한 책에 대해 이야기하는 코너입니다. 그런데 아직 읽지 않은 책에 대한 이야기는 읽고 나서 하는 이야기와 분간되지 않습니다. 어쩌면 이것도 시차의 문제일 수 있겠죠? 읽지 않았다고 했지만 '아직' 읽지 않았을 뿐인 것입니다⋯. 시차는 교란을 일으키고 교란은 균열을 만듭니다. 우리가 바라는 건 바로 이런 균열의 순간인지도 모르고요. 무언가 부서지기 시작하기 위해서는 작은 진동들이 필요하다는 말씀이죠⋯. 그런데 정확히 무얼 부수고 싶은 걸까요? 사실 잘 모르지만⋯. 뭔가 부수고 싶다⋯. 주방의 법칙을 박살내는 스눕 도기 독처럼⋯. 그런 주절거림. 멀미가 나지만, 그게 이 세계에서 지금 할 수 있는 일 중에 하나라는 생각이 드네요.
2026년, 2월도 이미 중순이네요. 모처럼만의 연휴가 세계의 비참함에 지친 사람들에게 잠깐 숨 쉴 수 있는 시간이 되시길⋯! (되셨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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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날엔 모로코 음식을 먹었습니다.
from 양
라짜로님이 앞에서 시차에 대해 얘기하고⋯ 마무리로 연휴에 대한 인사를 하셨는데요? 아마 이 레터가 설 연휴 전에 나갈 것으로 생각하고 그렇게 쓰셨겠지요? 하지만 그는 계획을 실행하지 못했습니다. 왜냐면 제가 레터를 쓰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같은 레터이지만 이끼님과 라짜로님, 그리고 저 사이에도 시차가 존재합니다. 그들은 연휴 전에 완성을 했고 저는 연휴가 끝난 바로 다음날 허겁지겁 이것을 쓰고 있습니다. 두 분의 글에 묻은 공기를 보며 부럽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 공기엔 아직 연휴에 대한 기대가 남아 있으니까⋯.
제가 이것을 씀으로써 라짜로님은 레터를 수정하지도 못하시겠지요. 여러분은 연휴 전의 인사와 연휴 후의 인사가 모두 들어있는, 요상한 시차를 품은 레터를 보고 계신 겁니다. 연휴 잘 보내셨나요?
이번 연휴에도 역시 가방 가득 두꺼운 책들을 요란하게 짊어메고 이집 저집 다녔는데요, 역시나 책들을 산책시키는 데에 그쳤습니다. 제가 산책시킨 책들의 면면을⋯ 공개합니다!
『세계 끝의 버섯』 애나 로웬하웁트 칭 지음, 노고운 옮김 | 현실문화 : 출간 직후에 2/3 정도를 읽었으나 남은 1/3 을 읽지 못하여 다시 처음부터 읽기 시작했습니다.
『영도의 글쓰기』 롤랑 바르트 지음, 이채영 옮김 | 필로소픽 : 바르트의 책들을 야금야금 모으고 있어요. 이 책을 아직 펴지도 않았는데 연휴 전에 괜히 책을 미리 사둬야 할 것 같아서 장바구니에만 들어있던 『롤랑 바르트, 마지막 강의』도 샀지요. 연휴 마지막 날 도착했어요.
『인생 수정』 조너선 프랜즌 지음, 김시현 옮김 | 은행나무 : 제가 지난 레터에서 책을 버리고 나면 일주일 이내에 꼭 읽어야만 하는 이유가 생기는 징크스 때문에 책을 못 버리는 슬픈 사람이 되었다는 얘길 했는데요, 그 징크스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인생 수정』 왠지 안 읽을 것 같아서 버렸고요. 정확히 일주일 뒤⋯ 이 책이 읽고 싶어서 못 견디겠는 상태가 되어 연휴 전날 도서관에서 빌려왔지요. 촤하하하.
그나저나 [책등산책]에서 얘기한 책들은 언제 읽게 될까요? 언젠가는⋯. 이 레터의 책들 또한 읽고 싶었으나 읽지 못했다는 점에서 또 하나의 책등산책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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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읽사는 유튜브, 스포티파이, 애플 팟캐스트에서 들을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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